홀연히 사라지고 싶다(글/편집실)
김C라는 연예인이 있다. KBS 최고 인기 예능프로그램인 1박2일을 하차하면서 그는 ‘홀연히 사라지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이른바 ‘개념’연예인으로 불리는 그가 남긴 이 말이 무척 멋지게 들린다. 개그맨 김제동과 같은 소속사 연예인이고 평소 소신발언이 잦은 그의 하차를 두고 외압이라는 설도 많았지만 어쨌건 가수라는 본연의 직업을 두고 ‘예능인’으로 너무 소비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인지 그는 많은 부와 인기를 안겨 줄 프로그램을 훌쩍 떠나기로 결심을 했다.
우리 잡지는 매월 짝수 달에 발간해서 그달 하순쯤 회원들에게 발송 작업을 하게 된다. 발송 며칠 뒤에는 반송 우편물이 간혹 날아온다. 주소가 바뀌거나 이사를 가거나 흔치 않지만 사망하거나. 지난 2008년, ‘안동’지 20주년 기념 115호에서는 1988년 창간호 때 합동회갑연을 했던 길안무진생 계원들의 모습을 다루었었다. 당시 합동 환갑연을 했던 그들은 계원의 반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남은 그들을 만나 20년 세월을 회고하며 감회에 젖었었다. 그런데 그들 중 김두만 할아버지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 우편물 봉투의 반송 사유란에는 ‘본인 사망’이라는 단어가 찍혀 되돌아왔다. 그들의 계원 수첩에는 고인 이름 앞에 ‘亡’ 자가 서글프게 적혀 있었는데 이제 그 글자는 김두만 할아버지 이름 석자 앞에도 적혀 있을 것이다. 평소 건강했던 할아버지는 갑자기 다리가 아파 병원에 갔다가 얼마 후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 ‘홀연한’ 소식에 나는 잠시 멍한 기분이 들었다. 우편물 반송 사유가 잔인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무진생 김두만 할아버지의 부고는, 주소록에서 그의 이름을 지워야한다는 업무를 잠시 미루게 했다. 127호 표지를 장식했던, 건강한 웃음의 103살 김오석 할머니의 웃는 얼굴에 찍힌 김두만 할아버지의 주소 라벨지를 보니 더욱더 애잔했다. 이별은 언제나 홀연히 올 수 있는 것, 무진생 김두만 할아버지의 명복을 뒤늦게 빈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상식적인 사회에서 열심히 살다가 그저 ‘홀연히 사라지고 싶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