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20주년 맞은 안동주부문학회(글/이희수_프리랜서 작가)
어머니의 詩 어머니는 언젠가부터 내게 시를 보내셨다. 대학에서 공부도 마쳤겠다, 전공 살려 일도 하겠다, 어머니는 내가 글을 아주 잘 쓴다고 생각은 안하셨겠지만 나름, 보통 사람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는 그런 생각이셨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가 고쳐 달라고 내게 보낸 시를 어머니의 바람대로 고칠 수 없었다. 어쩌면 그 글 속에서 나는, 나의 어머니의 다른 면을 보았거나, 내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우리 엄마의 그런 모습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에, 그리고 한편으로는 글 좀 쓰겠다고 고뇌하던 내게 어머니의 글은 매우 신선한 충격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시는, 나를 아주 부끄럽게 했다. 그리고 내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우리 엄마를 한참이나 생각하게 만들었다. ‘어머니의 글’ 이라는 것, 어머니의 문학이라는 것이 마치 하나의 고유명사인 것처럼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어머니는 또한 아내이자, 자식이다. 우리가 주부라고 하면 흔히, 적어도 그 세 역할을 모두 하고 있는 통칭이 아닌가 싶다. 때문에 주부문학이라는 말은 생소하지만 무언가 애착이 든다. 마치 내 어머니의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
바로 그런 단체가 안동에 있다. 올해 무려 성년식을 치른, 스무 번째 문집을 발행해 얼마 전 20집 출판기념회를 열기도 했다. 바로 안동주부문학회다. 소박한 이름이다. 이들의 지난 발자취를 들어보고자 추적추적 겨울비가 오는 날, 한 찻집에 모였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서 그럴까. 김종성 초대회장, 이꽃분 회장 그리고 김필녀 사무국장 모두 온화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있었다.
안동주부문학회
1991년, 안동에는 새마을 부녀회가 있었다. 당시 새마을 부녀회의 부회장이자 안동주부문학회의 초대회장을 지낸 김종성 왕회장님(이 날 모인 회원들은 김종성 초대회장을 왕회장님이라고 불렀다)이 새마을 부녀회 회장이던 박금순 씨와 각 동회장들과의 생각을 모아 주부를 위한 백일장을 통해 안동의 주부들이 글 쓰는 것을 장려하기로 했다. 그 때부터 안동주부문학회에는 반드시 안동시 새마을 부녀회의 백일장에서 장원과 차상으로 입상해야 입회할 수 있는 불멸의 입회 조건이 생겼다. 매우 까다롭고 엄한 절차다. 때문에 20주년을 맞았어도 회원은 고작 40명을 넘지 못한다. 어쩌면 이런 전통과 규칙은, 20년 이라는 시간 동안 단 한해도 거르지 않고 스무 권의 문집을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초창기 회원은 7명이었다. 지금까지도 안동주부문학회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김종성, 이순옥, 김명자, 이꽃분, 유영란, 김옥환, 박귀순 회원들이다.
막상 새마을부녀회 백일장을 치렀지만 입회조건이 까다롭고 연에 1번 치러지는 백일장에서 장원과 차상급만 입회할 수 있으니, 회원을 불리는 일이 쉽지 않았다. 때문에 첫 번째 문집은 채 열 명도 되지 않았던 회원들이 부지런히 글을 모아 그 이듬해인 1992년 발간하게 되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안동주부문학회는 둘째치더라도 새마을부녀회 백일장에도 참석하는 이가 없어 처음에는 초대회원들이 동네에서 4명씩 아는 이를 데려오기로 했었다. 그렇게 해서 모인 인연이 김종성 초대회장과 이꽃분 4대 회장이다. 그 때는 이웃끼리도 알음알이였으니 이런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지금은 이웃에 이사를 오고가도 그러려니 하는 세태가 씁쓸해지는 대목이다.
주부들 모임이라고 그저 그런 친목모임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안동주부문학회는 처음 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은 경북문화콘텐츠지원센터라는 새로운 터가 된, 안동문화회관에서 매달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졌다. 모임은 단순한 친목도모가 아닌, 월례회와 합평회는 물론이고 초정 김상옥 시인과 신경림 시인 등의 유명 인사를 초청해 배움의 길도 놓지 않았었다.
글에 대한 애정과 글을 쓰고자 하는 열정은 이들에게 주부라는 역할 이상의 정체성을 만들어주는 일이 된 것으로 생각된다.
성년식 치른 안동주부문학회
‘안동주부문학회’ 라는 이름은 안동문협의 권형모 선생이 작명해 준 것이다. 보기에는 평범한 듯도 하고 살짝이 촌스러워 보일 수 도 있는데, 그 뜻을 듣고 나니 가장 단순한 것에 그 뜻이 오롯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동의 주부들이 글을 쓰는 모임이 안동주부문학회 이니 순수하기 그지없다. 처음엔 회원들을 통해 추천도 받았으나 20년이 지난 지금도 가장 안동주부문학회 다운 이름인 것 같다며 자부한다.
간혹 안동새마을주부백일장에서 입상하여 들어온 회원이라 하더라도 장원에 ‘미련’을 둔 경우 백일장에 계속해서 도전을 하는 회원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기존에 있던 회원들이 자꾸 수상을 해서, 이제는 기존 회원들의 백일장 참가를 하지 못하도록 무언의 약속이 생겨버렸다. 처음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자는 취지에서 그렇게 되었지만, 한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목표를 가지는 모습도, 욕심을 부리는 모습도 사실은 안동주부문학회로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의 자부심이 어떤지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어설픈 키 재기는 안한다. 서로의 글을 아는 것뿐만 아니라 누구네 집에 밥숟가락 몇 개 있는지도 아는 사이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 또한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알고 있는 듯하였다. 어쩌면 외부인은 잘 모를, 혹은 주부가 아니면 잘 모를그 어떤 공감대도 있을 것만 같았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았기 때문에 더욱이 그러할까. 창립부터 함께한 이꽃분 회장은 안동주부문학회에 대한 애정이 아무래도 남다르지 않을까 싶다.
이꽃분 회장 “이제 안동주부문학회가 성년이 됐으니까, 안동주부문학회는 각자의 글 솜씨에 대해 시기하고 욕심내기 보다는 끌어주고 보탬을 주는 관계입니다. 회원 개인이 수필집을 내기도 하고 시집도 내고 또 각자 공부도 많이 하고 있어요. 지금은 안동을 떠나 외지로 나간 회원도 많은데 대학 강단에 서기도 하고 작가로서의 활동도 왕성히 하고 있답니다. 모두들 우리 안동주부문학회에 뿌리를 둔 것에 자긍심이 높아요.”
20주년을 지낸 것 치고는 이꽃분 회장이 이제 겨우 4대 회장이니 회장의 임기가 상당히 긴 것으로 알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김종성 초대회장이 무려 16년을 연임해오고 있었다고 한다. 김종성 초대회자을 왕회장님 이라고 부르는 것도, 회원들 끼리도 누구씨 누구씨가 아닌 수환이, 꽃분이 부르는 것을 보니 20년이니 16년이니 계산하여 따져서 생각하는 필자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문학회 활동이 5년, 10년을 넘기면서 부터는 모임에 보다 체계적인 틀을 만들기 위해 회장의 임기도 조정을 하고 사무국장을 역임해야 회장 자격이 주어지는 규칙을 세웠다. 열 여섯 번째 문집이 나오던 해에는 2대 회장으로 김명자 회원이 왕회장님의 뒤를 이었고 두 해 더 지나고 나서는 유영란 회원이 3대 회장으로, 그리고 2011년 스무 번째 문집을 내는 올 해부터는 이꽃분 회장이 안동주부문학회를 이끌고 있다.
회원 수는 모임이 지속되어온 20 년에 비하면 턱 없이 적지만 그 이유야 앞서 얘기해 두었고, 적은 수라도 그 속이 알차기 때문에 굳이 수에 아쉬울 일이 없다.
정기적인 월례회 모임 외에도 회원들은 서로의 경조사에 내 일처럼 거들고 있었다. 회원 하나가 한명씩만 데리고 와도 여든 명이서 일할 수 있다는 말이 처음에는 그만큼 가까운 사이라는 농처럼 들렸다. 헌데 누구네 집 결혼식에는 폐백도 해주고, 누구 네 집에 큰일을 치를 때는 봉사도 해주고, 또 과수원집 회원 네는 수확 철이 되면 어김없이 몇 박스씩 되는 과일을 들고 와 회원들과 함께 나눠먹는다는 얘기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데, 가족보다 더 가족같이 서로를 너무나도 잘 아는 모습으로 보였다. 크고 작은 행사를 할 때면 남의 손 빌릴 일이 없다며 자랑이 연신이었다.
물론 오랜 시간을 함께한 기존 회원들은 두말할 일 없겠지만 아무래도 지낸 시간이 아직은 적은 신입 회원 일수록 서먹한 법도 있을 것이다. 이런 문제까지도 세심하게 살피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김필녀 사무국장이었다. 사무국장을 맡아 안팎으로 살림하기에 정신없는 김필녀 사무국장은 기존회원과 신입회원들 사이에 가교역할도 해야 한다며 다부진 모습을 보여줬다.
활동 에피소드
안동주부문학회에는 김필녀 사무국장처럼 등단을 하고도 안동새마을주부백일장을 통해 안동주부문학회에 입회하게 된 경우도 많다. 물론 안동주부문학회 활동을 하면서 등단한 회원들도 상당하다. 김필녀 사무국장은 안동주부문학회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있다. 등단을 하기 훨씬 이전에 안동주부문학회에 대한 소문을 익히 듣고 마음에 두었다고 한다. 하지만 초기에는 김필녀 사무국장도 낙방을 했다. 대신 그 때 함께 데리고 간 친구였던, 김경숙 회원이 덜컥 붙어 김필녀 사무국장보다 더 안동주부문학회의 선배가 되었다. 이후에 김필녀 사무국장은 등단을 하여 명실공히 작가가 되었지만 안동주부문학회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고 2006년 백일장에 입상하여 바라던 안동주부문학회의 회원이 되었다.
김필녀 “글을 쓰는 게 삶이라고 생각하고, 50대 중반에 들어서 글을 쓰는 친구들과 함께 나이를 든다고 생각하는 게 좋습니다. 안동새마을주부백일장은 주부들의 진정성이 있어야 해요. 전문인으로서의 필체보다 삶에 대한 진정성이 글에 있어야 하거든요.”
김필녀 사무국장처럼 안동주부문학회에 애착이 어린 인연이 있기도 하고 또 20년의 세월 안에서 한 가족이 안동주부문학회의 선후배 사이가 된 경우도 있다. 바로 정재희 회원과 이은하 회원이 그러한데 둘은 시누와 올케사이다. 올해 백일장에서 장원으로 입상해 신입회원이 된 이은하 회원은 시누인 정재희 회원이 적극 추천하여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평소에도 회원들 사이에서 인심이 좋기로 소문난 정재희 회원은 올케에게도 좋은 시누이였다. 좋은 것을 함께 나누는 시누와 올케지간이, 그것도 글을 쓴다는 드믄 공감대가 있는 곳은 아마도 안동주부문학회 뿐인 것 같다.
안동주부문학회에서는 매년 기회가 닿을 때마다 문학기행을 떠난다. 물론 계획하여 이루어지는 여행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일도 있었다. MBC 라디오 여성시대가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는데 1994년 즘이었을까. 그 때 여성시대는 아마도 정한용, 손숙이 MC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여성시대에서는 매년 수기를 공모하는데, 안동주부문학회 회원이 채 열 명도 되지 않았을 때 그 수기공모에 모두 당선되어 1박2일의 서울행을 한 적이 있었다. 단체로 초록색 티를 맞춰 입고, 예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여의도에서 1박을 했던 그 때를 회상하는 김종성 초대회장과 이꽃분 회장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일상을 벗어나는 여행이라서도 좋고 또 내가 잘하는, 좋아하는 일로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도 기뻤을 것 같다. 왜 하필이면 초록색 티를 맞춰 입었느냐고 묻자 이꽃분 회장은 ‘서울에 사람이 많은데 서로 잃어 버릴까 봐서 그랬다’ 란다. 순간 웃음바다가 됐다. 사실 이꽃분 회장은 문학회 활동 이전에도 종종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 살림을 쏠쏠히 장만해 오고 있었다. 글 솜씨가 어디가지 않는 법인가 보다.
지금은 그런 일들이 적어졌지만 안동주부문학회에서는 정기적으로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예전에는 더 잦았지만 요즘은 다들 하는 일들이 있어 모이는 것이 쉽지 않은 탓인 것 같다. 이육사 선생의 시비도 정기적으로 청소하고 수혜와 같이 지역에 큰 일이 생길 때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봉사를 간다.
듣고 보니 이렇게 건전한 주부들의 모임을 어느 남편이 싫어하겠는가. 물어만 봤지 보지는 않았으나, 바깥 분들이 모임에 나간다면 싫어하지 않느냐 라는 질문에 한결같이 안동주부문학회 모임이라고 하면 ‘얼른 다녀오라’ 고 한단다.
안동시에서 지원받고 있는 사회단체보조금으로 크고 작은 행사를 꾸리는 데에도 벅차기 때문에 회원들이 매 월 회비 만원을 내고 있다. 하지만 월 만원되는 회비는 회원들 모임에 식비 충당이 겨우다. 그래서 짬짬이 방청객 박수부대 아르바이트도 하고 안동KBS 라디오 프로그램에 고정출연해 낭독도 하고, 부족한 살림을 꾸려나가는 데에서는 역시나 프로주부 9단의 역량이 발휘되고 있었다.
인연
안동주부문학회에는 많게는 70대 적게는 30대의 회원이 고루 모여 있다. 그야말로 엄마와 딸이 함께하는 곳이지만 공감하고 나누는 것에는 차이가 없단다. 어쩌면 이들이 가지고 있는 가족 같은 분위기는 세배전통(?)도 한 몫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종성 초대회장이 첫 임기 때부터 해오던 일인데, 새해가 되면 회원들이 모두 세배를 한다. 그러면 회장은 회원들에게 빳빳한 천 원짜리 세뱃돈을 준다. 언니가 동생에게 엄마가 딸에게 그러하듯이 내리사랑이 아닌가 싶다. 어떤 이는 두 장 달라고 떼를 쓰기도 한단다. 지금도 그 세뱃돈을 안 쓰고 고이 가지고 있다는 말에 이들의 모임이 조금은 특별한 인연으로 보여 졌다.
안동주부문학회가 올해로 20주년을 맞고 문집도 스무 권 째 발행했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이렇게 해온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은 당연하고, 때문에 주부 단체가 문학회를 이끌어 수십 년 정기간행물을 발행하고 있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란다. 그래서 이들의 책이 매년 국립중앙도서관에 전시, 보관되고 있다.
몇 해 전 부터는 안상학 시인이 직접, 매년 문집이 나올 때 마다 교정과 편집 맡아주고 있다. 회원들 간의 친목과 맺어진 관계도 그렇지만 안동주부문학회가 오래도록 빛을 잃지 않는 것은 주변에서 도움을 주는 많은 이들과의 인연이 있기 때문인 아닌가 싶었다.
부러운 것은 바라지 않아도 바라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인 것 같다. 회원 모두가 외부 대회에서 입상도 하고 등단도 한다. 어느 덧 이십 주년을 맞이해 그 역사가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되고 있다. 욕심내지 않고 한 길을 걸어온 덕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그런 것에도 조금 욕심을 더 내보고자 한단다.
밖으로 드러내기보다 안으로, 글로써 위안을 얻고 보람을 얻었던 미덕은 그대로 가지고 대외적으로 안동주부문학회의 내실을 다질 수 있도록 많은 참여를 계획하고 있는 듯 했다. 시화전도 계속해서 열어갈 계획이다.
그렇다고 가입자격을 완화할 생각은 절대 아니란다. 이들에게 안동새마을주부백일장을 통한 안동주부문학회로의 입회는 하나의 전통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40명도 안 되는 회원들 간의 유대감이란 것이 그러한 전통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안동주부문학회 회원들은 매 월례회 때 원고를 써오지 못해 오천원, 벌금도 낸다. 때로는 마감 전날 까지 원고를 쓰기 위해 벼락치기도 한다. 지난 20집 출판기념회 때는 뒤풀이로 노래방도 갔다. 십년 전 부르던 노래를 그대로 불렀다고들 한다.
다음 월례회 때도 누군가는 또 오천원 벌금을 낼 것이고 마감을 넘기지 않기 위해 오늘 밤을 새우는 회원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안동주부문학회, 30집 출판기념회 뒷풀이 때에도 어김없이 그제 노래방에서 불렀던 십년 전의 그 노래가 귓가를 맴돌 것 같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3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