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초이튿날에 생긴 일(글/이동백 시인)

40여 년도 훨씬 전, 강 건넛마을의 재종 할아버지께 묵은세배를 올리고 아버지의 두루마기 흰빛을 쫓아 어둠길을 얼펑덜펑 돌아오던 섣달 그믐날 밤이었습니다. 그 밤은 하얗게 뜬 눈으로 새웠지요.
설날은 차례 지내고 가까운 친척 어른들 찾아뵙고 그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는 일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초이튿날은 동네 한 바퀴 돌며 마을 어른들께 세배하는 일로 또 하루를 보냈습니다.
마을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장가가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얼음이 서걱거리는 식혜를 비롯하여 설음식을 배가 터지도록 얻어먹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였습니다. 아마 약관의 나이쯤이었을 겁니다. 그때도 올해처럼 눈이 푸지게 내려서 세상을 온통 하얗게 만들어 놓았지요. 마을에 마음이 통하는 몇 녀석들과 기타를 메고 개울로 나갔습니다.
눈 덮인 언 개울가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다섯 녀석이 손을 펴서 그 모닥불을 쬐였지요. 그 중에 한 녀석은 연기가 내구라워 엉거주춤 일어서기도 했지요. 그날 하늘 가까이에 머리를 치켜든 탓인지는 모르지만, 지금 그는 이승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렇게 몸을 녹인 녀석들은 거들먹거리며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지요. 아마 그 노래들은 세시봉 멤버들이 불렀던 노래였을 겁니다. 그날 나는 윤형주의 ‘두 개의 작은 별’을 부른 것도 같은데 가물거리는 기억 속에 그 날의 모습이 어렴풋이 이미지로만 떠오를 뿐입니다. 모닥불이 사위어 가는 줄도 모르고 밤이 이슥토록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불길처럼 우리는, 우리가 부른 노래를 그 어둠 속으로 잠행의 길을 떠나보냈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윈 모닥불을 남기고 강둑을 따라 눈을 밟으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 녀석은 춥다면서 몸을 잔뜩 웅크리고, 한 녀석은 하늘이 곱다며 눈을 들어 먼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멀리서 ‘쩡’하고 얼음 깨어지는 소리에 어둠이 놀라 어깨를 한 번 들썩이었습니다. 그 서슬에 흔들리는 불빛에 마을 집의 봉창들도 한참은 일렁거렸을 터입니다.




몇은 털모를 쓰고
또 몇은 기타를 들고
쑥부쟁이 마른 대궁
사잇길을 걷고 있었다.
강둑은
눈에 덮여
끝없이 침묵했다.


어깨를 들썩이다
주저앉은 그 모닥불
남기고 간 체온들을
혼자 남아 묻고 있을 때
간간이
달빛이 내려와
먼 마을을 불러냈다.


-<사진 1> 전문


 


그때를 배경으로 쓴 시인데, 시간적으로 섣달과 정월 초이틀, 공간적으론 어둠과 달빛. 지금 쓴 글과 시 사이에 간극이 생겨 있네요. 그러나 문제될 일은 없습니다. 기억에는 항상 오류가 있으니까요.
Fact(사실)와 Remember(기억하다) 사이에는 명사와 동사만큼이나 틈이 생기기 마련이지요.


그 날, 같이 언 손을 모아 모닥불을 쬐던 친구 가운데는 벌써 이승의 사람이 아닌 녀석들도 있습니다. 사람을 꼼짝 못하도록 잡아두고 있는 운명이 그렇게 한 것이라서 안타까울 것은 없으되, 문득 그 녀석들이 오늘 그리워졌습니다.
저승에도 스마트폰이 있다면 카톡이라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승에는 로밍도 허락되지 않네요. 할 수 없이 부산 사는 친구에게 전화 하여 그 옛날의 겨울 고향을, 그 개울 뚝방길을 둘이서 가슴으로 한참 헤매고 다녔습니다. 안동과 부산 사이의 거리라서 술 한 잔을 나누진 못한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쉬움은 며칠 후에 있을 친구의 안동행으로 달래기로 하고 친구와 나는 전화로 그리운 이야기와 노래만 나누었습니다. 그리워 부른 노래는 ‘금과은’의 ‘빗속을 둘이서’였습니다.


그 이야기와 노래에도 알코올 성분이 있는지 나는 그 이야기와 노래에 하루 내내 취했습니다. 취함은 세상을 아름답게도 하고 슬프게도 했습니다.
아름다워서 우리 둘이는 감탄했고, 슬퍼서 나 혼자 속으로 울었습니다.
이제사 정신을 수습하고 이 글을 씁니다만 이 글 속에도 분명히 알코올 성분이 배어 있을 겁니다. 그래서 이 글은 아름답고 슬프면 좋겠습니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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