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평화의 길을 찾아 안동시 경계를 걷는다(글/한철희 - 월간 '사람과 산' 안동주재기자)

안동시 경계를 걷는 사람들
<생명 평화의 길, 안동시 경계를 걷는다>가 지난 3월 10일(토) 예고개 봉수산 일월암을 기점으로 대장정에 들어가 이번 5월 28일(일) 다섯 번째 탐방지인 안동시 도촌리와 영양군 토구리 경계상인 능선까지 대략적으로 70km 남짓을 걸었다. 안동을 중심으로 영주, 봉화, 영양, 청송, 의성, 예천 등 다섯 시군에 맞댄 거리가 약 270km임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한참을 남겼고 또 그렇게 대단하거나 특별해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노정을 참고하여 그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감탄과 함께 혀를 내두를 찬사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그 여정이 그렇게 순탄치 않다는 점이다. 예전엔 분명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던 정겨운 산길이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지금은 그런 길은 고사하고 원시림 속을 헤쳐 불분명한 흐릿함에도 환호해야하는 어설픈 고행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루에 10km 이상씩 나아간 것도 따지고 보면 전 대원들의 넘치는 의욕과 그에 비례한 서로에 대한 확신과 믿음 때문이었다. 특히 이번 5월 들어 울창한 녹음 속에 진행된 2차례의 탐방은 한 장의 지도를 의지해 미지의 길로 나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 일인가를 서로 실감하는 귀중한 기회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거듭된 시행착오와 번거로운 발품만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안동과 영주의 나지막한 구릉지 그리고 하천 경계를 걸으면서 송이버섯 채취용으로 추정되는 각종 산중 쓰레기와 도로 주변에 퇴적물처럼 쌓이는 생활쓰레기 문제는 양심의 문제에 천착하는 좋은 기회였고, 예전엔 민물고기의 천국이었을 개울에 생명이라곤 그림자조차 발견하기 어려운 서글픈 현실에 새삼 놀라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또 봉화를 가르는 낙동강과 청량산 구간을 지날 땐 우리 지역에서 이런 천혜의 절경을 가진 행운에 다시금 감사하며 경이로운 자연에 대한 무한한 경외심을 키우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가? 발끝에 잡히는 모든 군상들이 하나같이 모두 따뜻한 가슴을 가진 평화롭고 조화로운 생명으로서 왈칵 다가왔다. 지천으로 흩날리는 연분홍 철쭉은 새로운 발견이었고 이곳저곳 제 자리를 꿋꿋하게 지키는 이름모를 아담한 야생화들에게 제 격에 맞는 이름을 지어주지 못하는 무지가 오히려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한편 안동, 영주, 봉화가 또는 영양이 서로 어깨를 맞대는 경계 꼭짓점에선 이 땅에 온갖  생명이 충만하여 그리하여 조화로운 평화가 영원하기를 비는 간단한 식과 제를 올려 우리 <안동 평화의 길, 안동시 경계를 걷는다>의 의미를 안으로 되새기는 소중한 기회로 삼기도 했다.   




전국토의 70%가 산, 산행의 필연과 즐거움
몇 년 전, 뒤늦게 배낭여행한답시고 약 보름간 유럽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마침 운이 좋게도 프랑스 파리에 선진 건축을 배우기 위해 둥지를 튼 후배 하나가 있어 수소문 끝에 불청객을 자청하곤 하루를 유숙한 적이 있다. 당연히 먼 이국땅에서의 해후이니 밤늦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대뜸 이 후배가 한마디 지른다. “형님! 한국은 참 축복 받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더욱 산이 그립습니다.” 해외에 나가면 너나할 것 없이 다 애국자가 된다더니 식상하게 피식 웃으며 넘기다가 그만 ‘산’이라는 단어에서 웃음이 말렸다.


“산이라니? 이곳 프랑스에는 유럽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알프스가 구름처럼 펼쳐져 있는 곳이며 산악인의 영원한 요람 ‘샤모니’와 ‘몽블랑’이 더불어 있는 곳이 아닌가?” 의아하게 묻는 나의 질문에 후배가 정색하며 손을 내젖는다. “샤모니와 알프스요? 프랑스의 변경 끝자락에 약간 묻어 있는 그 산자락 말인가요? 알프스가 아무리 잘나면 뭐 합니까? 꼴란 잘 난 이 나라의 산지는 전 국토의 20%도 채 안 되는 걸요. 한국은 전국토의 70%가 산이잖아요? 아무리 산을 피하려고 눈길을 돌려도 줄곧 따라오는 곳이 바로 한국의 정겨운 산입니다. 정말 미치도록 그리운 산천입니다.”


굳이 이 후배의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는 정말 산으로 뭉쳐진 나라다할 정도의 산이 유난히 많은 나라다. 어느 보고서에 의하면 대리석으로 대표되는 유럽의 거대 인공 건축 문화란 기실 알고 보면 산과 같은 자연의 외경이 부재한 자리에 권력에 포위된 인간의 부질없는 거만함이 축소 함축된 문화라고 한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의 고래 건축문화는 산을 압도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일찍이 터득하고 있었기에 스스로 자연의 일부분으로 들어가는 지혜의 결집체이자 응결로 요약된단다. 또 굳이 최근에 밝혀진 산림자원이 인간에게 주는 유무형의 유익을 이런저런 통계 자료를 통해 따지지 않더라도 산과 강이 주는 정신적인 유무형의 혜택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이유야 어째든 우리 주위에 산과 강이 넘치는 것은 일면 하늘이 내려준 천운으로 대단한 축복임에는 틀림없는 듯하다. 하지만 최근 새만금 사건과 천성산 사례가 보여주듯 우리 사회에 요구되는 개발과 보존이라는 환경에 대한 진지한 화두는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이런 국토의 자연 조건 때문인지 최근 한 언론 보도에 의하면 우리나라 등산인구는 약 일천만 명에 육박했단다. 물론 단순 수치이겠지만 이쯤이면 우리나라 국민들 중 산에 단 한번이라도 오르지 않은 사람은 없을 듯하며 일명 산에 관한한 광적인 마니아도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산이 많은 나라에서 산을 많이 접하고 또 그 호연지기를 배우고 익히는 것은 당연히 적극 권장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최근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정체모를 각종 산악회의 폐해, 그리고 오로지 자본에 경도된 상술과 한탕주의에 뒤섞인 상흔에 의해 점점 그 생채기를 더해가는 이 땅의 산하와 그에 수반된 환경적, 생태적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 삶의 터전으로 인식되어 오던 고래의 전통 자연관이 나름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면 지나친 기우일까? 뭇 생명을 낳고 기르며 또 기름지게 하는 우리 주변의 소중한 삶터를 어느 순간부터 대기 중의 산소처럼 그 가치를 제대로 모르고나 있는 것은 아닌지....... 보다 고급 양질의 등산문화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점이 온 것은 아닐까?


생명평화의 탁발순례, 경계걷기의 시초
최근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돌아가는 국제정세가 그 어느 때보다 심상치 않다. 먼저 미,중,러,일로 대표되는 파워 4대 강국에 에워 쌓여 있는 지정학적 위치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천형적인 문제라 하더라도 북한 핵문제와 관련하여 고조되는 그 긴장은 사뭇 살벌하기조차하다. 여전히 슈퍼파워 미국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완고하고 북한은 의외로 반발이 완강하다. 또 중국대륙과 일본조차 미국의 힘의 쏠림을 이용하여 적대적 관계를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아 힘의 균형추가 무너지는 만약의 상상은 그저 섬뜩할 뿐이다.


한편 국내적으론 주한미군기지의 재배치 문제로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으로 양분되어 친미와 반미의 이분법이 여전히 팽팽히 대립중이다. 그 어디에도 고귀한 생명과 평화 그리고 화합과 조화가 끼워 들어갈 여지는 없어 보인다.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는 전쟁도 정의의 이름을 빌어 치루고 파괴도 고귀한 생명의 이름으로 치루고 있는데 여전히 억울한 살생만이 들리고 안타까운 희생만이 지구촌을 뜨악하게 하며 또 경악시킨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모순이 지속적으로 생기며 또 인류가 만들어낸 꿈의 세기라는 21세기에도 왜 여전히 현재진행중일까? 이쯤에서 아귀다툼일랑 잠시 접어두고 생명을 가진 뭇 존재들의 아우성에도 조용히 귀를 들여다볼 여유가 우리에게는 진정 없단 말인가?     


지난 해 가을, 우리 안동지역에서 아주 의미 있는 행사가 있어 매우 이례적인 주목을 받았다. 나를 넘어선 인류애에 기초한 보편적 평화 생명 바람이 바로 그것이다. 즉 한반도의 평화와 그리고 나아가 인류의 평화를 위해 번거로운 고행을 마다하지 않으며 몇 년 전부터 이 땅의 남도를 두루 섭렵하면서 평화 생명기운을 불어 넣기 위해 혼신의 탁발순례를 하고 계시는 도법스님과 그 일행의 안동 순례였다. 마침 우리 안동지역에서도 뜻있는 지역 일꾼들이 함께 동참하여 신선한 감동을 줌과 동시에 그 분위기에 한껏 고무되었었다.


그 뒤 도법 스님을 위시한 생명평화 탁발순례단이 안동을 떠난 뒤 이런 생명평화 기운을 안으로 되새기며 또 지역 내에서 우리 지역의 특성을 최대한 살림과 동시 대외적으로도 우리 안동지역의 이미지를 새롭게 부각시킬 수 있는 사업이 무엇일까 진지하게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이쯤에서 결론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산과 물이 유난히 많고 또 들이 고루 넓게 펼쳐져 있는 우리 지역의 매우 독특한 지형적 특징에 주목, 결국 이런 고민의 결과가 오늘의“생명평화의 길, 안동시 경계를 걷는다와 그 사람들(이하 안경사)”의 구성과 발족이 된 연유라 하겠다.


<생명평화의길, 안동시 경계를 걷는다> 구성과 발족은 위의 이런저런 이유가 상호 작용되어 지난 1월, 올 연말까지 걷기라는 형식으로 처음 발기되었다. 주체는 <안동시 경계를 걷는 사람들(이하 안경사)>로 하였고 참가대원으로는 주로 우리지역에서 우리 다음세대 아이들에게 참교육을 가르치고 또 올바른 인성 교육을 지향하는 일선학교 선생님들 중심으로 꾸렸다. 그러나 참여대원 자격은 별도로 지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 안동지역을 사랑하고 생명과 평화라는 주제에 맞게 나름의 의미 있는 탐험과 모험을 즐기시는 안동시민이라면 누구나 참가할 수 열려있는 체제다.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
안동시 경계는 북으로 영주, 봉화와 동쪽으로는 영양과 청송과 맞닿아 있으며 남으로는 의성이, 서쪽으로는 예천과 이웃을 접하고 있는 등 그 접경거리가 결코 가볍지 않다. 국립지리원 2만5천분의 1지도 기준, 도상거리만 270km에 이르고 실제거리는 약 300km에 육박할 것으로 예측되어 결코 순탄한 노정만은 아니다란 판단이다.


그러나 생명평화의 길이란 주제에서도 암시하듯 그 지난하고 험난한 노정만큼 이 땅에, 특히 우리지역으로부터 생명과 평화의 가치와 기운이 발원하고 또 시원지가 되고자하는 간절한 바람 또한 크다. 물론 300여 킬로미터의 여정 상엔 많은 난관과 장애가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때론 험난한 산악(학가산, 청량산, 갈라산, 보문산 등)과 굴곡 많은 강들(안동호, 낙동강, 임하호, 미천, 길안천 등)을 넘을 것이며 때론 드넓은 들로 나와 우울한 농심(農心)들과도 자주 조우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탐사여정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 지역만의 특징과 특색을 재조명하여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필요한 진정한 평화와 생명에 대한 가능성과 희망을 배우는 것이 될 것이다. 결국 우리들이 내딛는 작은 발걸음이 쌓이고 쌓여 작은 안동이 결국 생명평화라는 거대한 안동으로 거듭나는 초석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경계 없는 세상의 경계 걷기
‘경계’라는 말에는 누군가 말했듯이 너와 나의 구분을 획일화하고 고정시킨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있어 오히려 생명평화와 상호 화합과 조화라는 이미지에는 모순 된다는 말이 제기되었다. 또 우리 고유어인 ‘살피’를 살리고 고증하자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굳이 우리 <안경사>가 ‘경계’라는 말을 잠정적이나마 쓰기로 한 내면에는 다음과 같은 고충도 묻어 있음을 아울러 밝힌다. 첫째는 경계란 무엇인가라는 진지한 물음이다. 우리가 가는 산과 들, 그 어디에도 자연이 구분지어 준 진정한 경계는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사람이 땅을 가르고 물길을 나누며 네 것과 내 것을 구분지어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의 산물이었을 뿐이다. 우리 지역을 가르는 경계 상에는 엄연히 아름드리 소나무가 자라고 연분홍 철쭉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그 소유를 가를 것인가? 내 것과 네 것에 익숙한 우리에게 우리가 걷는 ‘경계’는 진정한 경계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되묻고 있음을 아는 작업이기도 하다.
다음으로는 너와 나를 구분 짓고 분리시키는 보이지 않는 선, 경계를 진정으로 넘기 위해서는 경계를 제대로 아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전제이다. 즉 경계를 걷는 작업이란 결국 경계를 허물기 위한 작업과 맞닿아 있다. 물리적인 경계선을 제대로 인식하는 틀에서 비로소 정신적인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이 결국 우리가 처음 의도했던 생명과 평화 그리고 화합과 조화가 아우러지는 첩경임을 알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걷는 <생명평화의 길, 안동시 경계를 걷는다> 주제와 목적이 위의 ‘경계’ 제대로 알기와 바로 알기 작업을 통해 어느 정도 성과가 주어진다면 다음은 경계 제대로 허물기 작업, 즉 <생명평화의 길, 안동시 둘레를 걷는다>로 나아가는 구심점으로 삼고자한다. 그때쯤이면 우리 <생명 평화의 길, 안동시 경계를 걷는 사람들>은 <생평평화의 길, 안동시 둘레를 걷는 사람들>로 거듭나 또 한번 이 땅에 생명 평화에 대한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임을 약속하는 바이다.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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