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아침 단상(斷想)(글/권택진 - 안동시 안막동)

주방에서 들려오는 경쾌한 도마 소리. 그 소리에 실린 구수한 냄새는 문틈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방안을 가득 채우지만 나는 독수리 타법으로 컴퓨터에 글 올리기에 여념이 없다.
마누라는 여느 날과 다르게 주방에서 한껏 요리에 열중하며 상 차리는 걸 도와 달라고 나를 찾는다. "응 알았어" 손은 자판을 누비며 입으로만 일어서서 나가는 나.
하얀 면사포에 곱기만 하던 새색시는 어느 틈에 중년 부인이 되었고 성장한 아이들은 직장에, 나라의 부름에 따라 다들 나가고 없다. 이제는 새치머리가 더 많은 둘만 달랑 남은 터라 그저 대충 해먹었는데 평소와 달리 오늘은 정성 들여 한상 차려졌다.
‘오늘이 무슨 날인가?' 하다가 아차 싶다. 그 언젠가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놓으며 하루하루 날 가는 것만을 기다렸는데 정작 당일엔 잊어버리다니.


힘차게 그러나 앞날의 어려움을 예견하듯 서럽게 울며 태어났을 나는, 젖 물림도 미처 떼지도 못한 채 전쟁의 환난을 피해 들쳐 업혀져 돌아다녔다. 심지어 거두지 못하고 버리고 갔다가 갓난아기 울음소리를 못 잊어 되돌아와 다시 업고 갔다는 사람도 있었다는 전쟁터의 처참함을 요즘 사람들은 어찌 알까?


가물가물한 추억 속의 학교급식이 배고팠던 기억을 다시 생각나게 한다. 아이들 키만큼이나 컸던 누런 종이로 만들어진 우유 드럼통을 낑낑거리며 학교 창고 앞에 옮겨 놓으면 한줌이라도 더 타려고 "선생님 조금만 더 주세요, 예?" 사정하던 풍경이 눈에 선하다. 그럴 때면 선생님은 난감한 표정으로 " 미안하다. 다들 조금씩 나누어 먹어야지" 말하셨다.
도시락에 찐 분유는 말랑 말랑 하던 것도 잠시, 식으면 돌덩이로 변해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니며 빠드득빠드득 갈아먹던 그 시절 유일한 먹거리였다. 창고 앞에 둘러서서 서로 먼저 타려고 하는 아이들과 차례대로 나누어 주시던 선생님 모습이 빛바랜 흑백사진 보듯 희미하게 그려진다.


출렁이는 양동이에 아무런 맛도 없던 강냉이 죽. 화장비누 같았던 버터 한 조각. 초등학교 어린 나이에도 무거운 줄 모르며 그저 많이만 주면 신이나 좋아하던 아이들. 먹을 게 없던 시절 무엇이던지 입 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꿀맛이었던 추억.
옥수수 가루로 찐 작은 벽돌 같았던 직사각형 빵이 모든 학생에게 하나씩 돌아갈 즈음, 조금씩 경제도 좋아지며 몸도 마음도 커졌다. 그런 우리세대들에게 생일잔치란 있을 수도 없고 어쩌다가 한다 해도 미역국에 허연 쌀밥이 최고의 밥상이었다. 아이들 생일에 부모님이 정성껏 차려 주는 상차림도 다 옛날일이고, 패밀리 레스토랑이니 뷔페니 유명한 호텔이니 하는 턱없는 세상. 어려웠던 옛 얘기 들려줘봐야 세대차이나 느끼는 아이들에게 어떤 든든한 소리로 세상을 살아가도록 도와줄지, 힘든 고비 겪어온 우리 세대들이 풀어야할 숙제지 싶다.


미역국에 쌀밥, 조기, 대여섯 가지 반찬을 말끔히 차려 놓은 마누라가 상을 앞에 두고 자못 진지하게 말한다. “육해공군에 삼색 반찬 이예요. 몸에 좋은 영양가는 골고루 다 갖추었으니 맛있게 잡수세요.”
‘그래, 멋지게 차린 음식 많이 먹고 건강하게 살아야지. 지난 날 힘들었던 생각에 무엇이든 감사하며 살아가야지’ 생각해본다. 그러다 문득, 객지에서 고생하는 아들 녀석은 또 무얼 해먹고 어떻게 지내는지 염려스러워 영락없는 부모마음으로 생일 아침 수저를 든다.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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